OpenAI만 바라보며 컴퓨터에 매몰되었던 때로부터 8년이 지났다. 꽤 멀리 왔다고 생각했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비슷한 방식으로 무너졌다. 힘들수록 혼자가 됐고, 성취를 앞세우며 사랑과 사람을 뒤로 미뤘다. 세 번이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나서야 절박하게 답을 찾기 시작했다.
뒤늦게 실패한 대화들을 복기하며, 내가 놓쳤던 상대의 생각과 감정, 내 머릿속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던 다정한 말들을 배웠고, 내 기준을 상대에게 씌우며 차이를 잘못으로 판단하던 패턴도 보게 됐다. 사실을 따지고 해결책만 찾는 태도는 오히려 관계를 멀어지게 했고, 상대의 마음은 추측이 아니라 질문으로 알아가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가장 취약했던 시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힘듦을 털어놓으며, 이해받고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는 걸 느꼈다. 그렇게 약해져 본 적이 없었기에 오래도록 감정을 지우고 이성으로만 강해지려 했지만, 이제는 솔직한 감정을 나누고 함께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더 강해지는 길이라는 걸 안다.
도망치지 않고 함께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 것. 혼자 이룬 성공 끝에는 내가 바라던 행복이 없다는 것. 값비싼 대가로 삶의 정의를 다시 쓰고 나서야, 성공해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든 오래된 저주도 풀린 것 같다.
이제는 타인과 진심으로 연결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늘 그래왔듯, 결국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그게 내가 분노를 품고도 사랑을 지키는 길이다.
Love & fury
나는 나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들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다
스스로 행복한 사람만이 타인의 행복을 바랄 수 있는 건 아닐까.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 저항하고 투쟁하는 사람들은 이기적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아니면 나만 좀 더 이기적인 걸까.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 사랑하기로 가족을 만들기로 결심한 사람들은 인생의 한 순간 자신보다 타인의 행복을 좀 더 바라겠다고, 바래야겠다고 다짐했던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나는 거짓으로 맹새할 수 없고,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할 수 없다.
내가 결국 자유를 얻게 된다면, 기꺼이 나의 행복을 바라고 바랬던 사람들의 행복을 바랄 수 있게 될까. 나의 본성이 그렇게 되지 못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최근에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데, 관련해서 질문을 해 주신 분께 드렸던 생각 공유합니다.
욕심이 많으신 만큼 고민이 크다고 생각하기에, 본질적인 열정과 분노의 크기가 크다고 가정하고 답변드렸습니다.
안녕하세요, -님. 처음 뵙겠습니다.
어려운 질문을 주셨는데 제가 떠오르는 생각을 적겠습니다.
개발적 경험뿐만 아니라 개발 외적 경험이 모두 중요한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강하고 날카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선 개발적 경험이 30살 전에 두각을 반드시 보여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각을 보인다는 건 누가 봐도 이 사람은 무언가 다르다라는게 똑똑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보여야 하고, 그러한 능력은 누군가와 일하면서 배우는 게 아니고 스스로 agency를 가지고 하는 활동 중에 반드시 얻어져야만 합니다. 타인에게 의지해야겠다는 생각은 저뿐만 아니라 제 주변 사람들도 커리어 어느 시점에서도 하지 않은 거 같습니다.
openai는 제가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한 장소 중 하나지만 그곳에 가기위해 제가 포기하고 집중하고 했던 것들이 저의 본질을 만들었습니다. openai에서 얻은 가장 큰 가치는, 내가 이겨야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는 것과, 제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가 뚜렷해졌다는 것입니다. 엔지니어링은 세상에 매우 작은 일부일 뿐이며, 그것만으론 세상에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저는 그곳을 떠나 싯다르타와 같은 경험을 하면서 더 많은 성장을 이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중요한지는 -님이 어떤 가치를 좇는지에 따라 다르고, 그 길은 반드시 본인이 찾으셔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겐, 본인의 한계와 시간의 부족함에 분노하면서도, 그냥 닥치고 나아가야만 하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행복할 순 있으니까요. 내가 왜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지 이유가 명확하게 있어야 consistency를 유지하고 복리의 성장 곡선을 그릴 수 있을 거 같네요.
세상에 정답은 없고 저와 세상이 말하는 정답을 깨부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openai를 가기 위해 발버둥쳤던 8년 전이나 지금, 저는 동일한 결핍과 분노를 갖고 있습니다. 저는 저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자 하는 분들을 좋아하고, 그들이 결국 원하는 목표를 이루어 행복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Reference: #1
광해로 오염된 서울에선 <별 헤는 밤>과 같은 아름다운 시가 탄생할 날이 과연 다시 올까. 하루의 절반 동안, 시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하늘이, 수많은 별들로 차 있지 못하고 단색의 검정으로 매워져 있는 걸 볼 때마다 아쉽다.
AI, 효율, 더 나은 인간. 기술의 발전을 외치는 나와 주변에서 낭만을 찾기란 쉽지 않다. 경쟁하고 욕망하는 세계로 스스로를 밀어 넣으면서도 낭만을 잊지 않기 위해선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 그림, 책을 보는 방법일까.
알트만, AI 말고 낭만에도 좀 투자하라고 🌠
틀에 박힌 고교생활에서 벗어나 대학의 자유로움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부터 사용하게 된 아이디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끊임없이 말했듯이 20대의 매일을 즐기자고 다짐하며 모든 계정을 바꿨다. 지금 돌아보면, 나의 대학 생활은 어느 정도 carpe diem 했던 것 같다. 등수나 학점에 연연하지 않고, 코딩 그 자체와 소소한 발전, 다양한 경험을 즐겼다.
하지만 학교를 떠나 군복무를 시작하면서, 나는 성취만을 행복으로 보고 매일을 즐기지 못했다. 첫 몇 달간 성장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보며, 내가 버리게 될 2.8년을 최대한 가치 있게 보내기 위해 행동의 가성비를 계산하고 효율적인 삶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인정해 주는 가를 가치 판단의 척도로 삼고, 깃헙 스타, 페이스북 좋아요 수, 기업의 컨택 수 등 정량적이고 일반적인 기준에 집착했다. 내면적 가치 판단이 아니라 외부의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면서 언제나 남들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친다는 생각에 매일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이렇게 관심 그 자체가 삶의 원동력인 관종이 되면서, 자존감은 끊임없이 떨어졌다.
그리고 나의 작디작은 그릇을 얼마나 키울 수 있는가, 내가 속한 우물을 얼마나 벗어날 수 있는가를 두 손으로 증명하고 싶었다, 나도 할 수 있다고. 거창하게 말했지만 결국 탑스쿨에 가는 것이 나의 세속적인 목표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성장이 정체되었다는 것을 느꼈고 그런 나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 성장과는 관련 없지만,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프로젝트들을 닥치는 대로 해왔다. 사람들은 내 거품을 칭찬했지만, 나는 그 거품이 꺼져버릴까 두려웠다.
그리고 결국 심판의 날이 왔고, 작년 12월 나는 대학원과 회사에 지원했다. 2월 초부터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메일을 확인했고, 무소식 혹은 불합격 메일을 보고 맥없이 다시 자곤 했다. 지난 2년간의 노력이 실패로 끝났고 모두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생각에 그냥 집안에 틀어박혀 있고 싶었다. 그 누구도 보고 싶지 않았고 얘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OpenAI 합격 메일을 받았을 때도 마냥 웃지 못했다. 이게 끝인가 싶었는데 역시 그게 끝이었다. 그렇게 지난 2년의 마침표를 찍었고 우울하기 짝이 없던 심판은 끝이 났다.
어쨌든 carpedm20.
지난 2년을 돌아보면, 나에겐 일과 컴퓨터뿐이었고 사람은 없었다. 인간관계를 등한시했고 가치관과 행복에 대한 질문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을 가기 전에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것을 최대한 많이 하면서 나와 사람, 일상의 행복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과의 대화부터, 여행, 독서, 음악을 하며 부족한 점들을 채우려고 노력 중이다. 그 과정에서 내 심장을 다시 뛰게 해 준, 하루하루를 즐기는, 새로운 경험을 공유하는, 부족한 관계를 깨닫게 해 준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고 행복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혼돈의 카오스가 지나갔다. 나를 컴퓨터의 세계로 인도 해주신 분부터, 구현에 미치게 만들어 주신 분, 병특을 시작하게 만들어 준 술까지.. 인생의 방향을 정하게 도와주신 수많은 인연에 감사하고 또 다른 인연을 기대한다.